등반정보/전라도자료

넘원 문덕봉

ropeman 2010. 7. 2. 16:21

 

 

문덕봉 산행길잡이

덕봉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암릉이 주는 등반의 재미를 솔솔하게 느낄수 있는 곳이다.
산행은 원점 회귀가 불가능함을 고려해 두 대의 차량을 이용,들머리인 송내마을에 주차시킨후 하산지점인 평곡리 새터마을
이나,

마을에 차를 대기 시켜놓은 것이 좋다. 송내마을에서 그적재 고개가지는 마을회관으로 이어지는 포장길을 따라가다,

회관 앞에 차주차시킨 후 비포장 길을 좇으면 된다.

이 임도길은 매화나무 숲을 지나면 좁은 숲길로 이어진다.문덕봉과 삿갓봉을 가르는 그럭재는 금지면 입압리 사람들이 순창으로

들던 고개고 고리봉 산행의 들머리기도 하다. 고개에서 소나무 숲 속의 오솔길을 오르면 이내 무덤이 한기 나타난다.

왼편이 숲길로 들어서면 급경사의 오름길이 이어지는데 한차례 땀을 빼고 나면 제법 전망이 좋은 암봉에 닿게 된다. 이 암봉의

왼쪽 사면으로 남자의 성기를 닮은 바위가 자리잡고 있다.

이 바위를 지나고 나면 길은 작은 암봉을 좌우 측으로 돌아 오를 수 있도록 나 있다.물론 높지도 않고 등방이 쉬워 바라 치고 올라

좋지만 소나무 가지를 헤치고 나와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다. 이후론 15분 정도 줄창 오르막을 치고 올라야 한다. 이후 암봉에

올라서면 용아장성릉 같은 기암들이 나타나 도봉산의 뜀바위 같은부분을 건너뛰거나 소나무 가지를 잡고 내려서기도 해야 한다.

문덕봉 정상은 10여평 정도의 평탄한 공간이 나타나 쉬기에 좋다. 정상에서 하산은 첫 갈림길에서 바로 서쪽 능선을 좇아 평촌마

로 하산하거나 비홍치로 이어지는 주능선을 타고 가다 갈림길이 있어 안부에서 택촌마을로 내려서도 된다. 또한 좀 더 산행거리

늘려 곰재에서 택촌 마을로 하산해도 좋다.

 

 

교통 및 접근 문덕봉으로 접근 하려면 교통이 불편한 곡성보다는 남원을 기점으로 삼아야 한다.

서울에서 남원강남고속버스터미널(02-530-6211)에서 06:00부터 19:20까지 약 30분 간격으로 버스를 운행한다.

4시간 10분 거리로 요금은 일반 11,000원 이며 우등이 16,300 원이다.남원에서 산행기점인 송내마을까지는 06:20

부터 19:40분까지 하루 1시간 20분 간격으로 곡성과 남원간을 왕래하는 남원여객(0671-631-3116/7),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광주나 순천 ,여수지역에서는 시외 버스를 이용,곡성을 기점으로 삼는게 좋다.

경북 지역에서 문덕봉에 이르려면 대구 서부시외버스정류장(053-656-2824)에서 07:55부터 18:30분까지 하루 7회

운행하는 직행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2시간 거리로 요금은 7100원. 경남일원에서 마산이나 진주, 부산에서 남원행

버스를 이용 ,남원에 이른 후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장터먹거리 들머리인 송내마을이나 평촌마을에는 민박집이 없는 관계로 남원시에서 숙박을 해결하는 것이 좋다.

남원시 효산 콘도미니엄(0671-633-6011)이나 한성여관(625-7944) ,투인파크(620-5000) ,동화장(6252488) 이용

하루 2만 5천원. 곡성에선 신도림산장(0688-363-1882) 도림 국제 관공호텔(363-7295), 알프스 모텔(363-8026)등.

 

볼거리 남원시내 관광 단지내의 음식점들을 이용하거나 한일식당(632-80054), 곡성시내의 식당을 이용

남원은 춘향전의 무대인 도시다. 한루를 둘러본후 왕정동의 대복사를 찾기 바란다. 보물 30호인 층석탑31호인

석좌가 조상들의 미의식을 일깨워 줄 것이다. 곡성읍 월봉리에 위치한 도림계곡은널찍하고 편편하다.

지   도  한 반석위를 흐르는 맑은 물줄기가 일품인 곳으로 삼남의 으뜸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클릭! 5만분의 1 순창, 남원

 

 

문덕봉 리지                          기자기한 재미 솔솔한 작은 천화대

엇이든 크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커다란 해바라기보다 음지의 비좁은

돌 틈에서 피는 야생화가 아름다운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소박하고 겉치

레가 없음을 말하는 박이불문 처럼 소박한 것은 다소곳하기도 하며 때론

수많은 것 중에서 드러내지 않은 멋을 느끼게 한다.
전라남도 곡성군에 속한 문덕봉(598m) 아기자기한 재미와 함께 소담함을

느끼게 하는 곳으로 팔공산에서 성수산으로 이어지던 호남정맥 줄기가 마

령치에서 남쪽으로 치달아 묘복산과 남대문치, 청룡산으로 이어진 산줄기

에 놓였다.
문덕봉에서 고개를 쳐든 산줄기는 이후 삿갓봉과 고리봉을 일으켜 세운다.

봄철 간단한 암릉길 하나 없냐는 문덕봉이 작은용아릉이 천화대 같다는

귀띔을 주었다. 농번기를 맞은 마을은 모두 밭으로 나갔는지 한적하기만

하다. 더욱이 몇 채 안되는 집들을 산줄기가 품고 있어 편안함마저 느끼게

했다. 한창 퇴비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할아버지에게 문덕봉의 들머리

인 그렇재 오름을 물어 보자, "그냥 이 길만 쭉 따라가." 란 말로 대신 한다.

길은 마을의 민가들을 지나치자 밭으로 들어설 수 있는 임도길 오름으로

나누어 졌다. 밭일에 열중하던 주민들은 평일임에도 배낭을 맨채 이 작은

마을을 찾은 일행이 신기한 듯 눈길을 떼지 않는다. 하얀 매화나무에 꽃이 피어 눈밭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터널을 통과하니 길폭이 좁아졌다. 길가에는 제철을 만난 쑥이 캐내 갈 주인을 위해 성그레 웃고 있다.

그럭재가 고리봉과 문덕봉 산행의 들머리
좁은 숲길 가에 핀 쑥과 꽃들이 완연해졌음을 느끼게 한다. 소담한 멋을 자랑하는 꽃들을 감상하며 좌우로 이깔나무

들이 우뚝선 숲길을 따라 30여분 오르자 그럭재에 닿는다. 그럭재 안부에 들러 앉아 수인사를 나누고 나니 신옥정씨

(40세)가 마른 입이라도 축이라며 싱싱한 오이를 내놓았다. 사람은 앉으면 눕고 싶다고 했다.

 

마을 주민이 그의 조상을 모셔 놓은 듯한 3기 무덤을 지나자 급경사 오르막이 갈지자로 이어져 촛대봉에 닿았다.
촛대봉이란 이름은 봉우리 왼쪽 사면에 자리잡은 남자의 성기를 조각해 놓은 듯한 바위에서 유래했다.

촛대봉 이후론 다시금 경사 급한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오름길 뒤편으로 우뚝 솟은 고리봉은 마을 입구에서 보던

푸른 모습과는 달리 하얀 암벽 면이 드러나 왠지 보여주기 싫은 여인의 속살을 훔쳐본 느낌이다. 문에 문덕봉을

오른 사람이면 고리봉이 지닌 바위봉의 웅장함에 반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고 한다.

 

설악 공룡이냐 지리산 동부의 달뜨기 능선이냐를 고민하고 있던 찰라에 전혀 기대치 않았던 이름이 정기산행지

올라오고 나니 나에게는 가고싶은 산이 너무 많은지라 누구와 가느냐 만큼 어디를 가느냐 또한 아직까지는

중요한것 같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라고 '누구와'도 챙기고 '어디로' 도 신경쓰고 싶은게 초보의 욕심인것 같다.

물론 모든 산이야 결국엔 다 가고픈 산이고, 등산을 하는 이산, 저산 가린다는 것도 그렇지만 아무리 골고루

어도 젓가락이 한번 더 가거나, 먼저 손이 가는 반찬이 있듯이 아직 못가본 명산들을 먼저 보고픈게 나같은

초보들의 공통된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면에서 안내산악회 산행 리스트에서도 보지 못했고, 도립공원도, 군립공원도 아닌 남원의 고리봉은 이전

한번 산행공지를 통해 이름을 들어는 보았으나, 그때도 이번과 똑같은 이유로 '누구와'를 포기하고 더 끌리

는 다른곳으로 홀로산행을 택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번에 다시 두번째 공지를 보고나니 그래도 이산이 나름대

뭔가 한가락이 있는 산이기에 정기산행 공지를 통해 또 올라왔으리라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결국 지리산을 

가슴에 담고 '누구와'를 선택하였다.

 

고리봉의 유래는 소금배를 묶어두었던 '고리(還)' 에서 유래한다. 지금 남원 시내를 관 통하며 흘러내리는 요천

은 남원 관광단지 앞

물줄기만 둑을 쌓아 뱃놀이가 가능하지만,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하동을 출발한 소금배가 섬진강에 이어 요천

물줄기를 거슬러 남원성 동쪽 오수정(참나무정)까지 올라와 닻을 내렸다고 한다. 또 다른 유래는 홍수설로 옛날

에 큰 홍수가 나서 대강면 일대가 모두 물에 잠기는 바람에 고리봉과 광동리에 고리를 달고 배를 운항했다고 하

는데, 현재 광동리에는 당시 고리를 맨 흔적이 남아있는 바위가 있지만, 고리봉에는 없다고 한다.

 

당시 소금배가 중간 정박지로 금지평원에 머물기 위해 배 끈을 묶어두었던 쇠고리를 바로 고리봉 동쪽 절벽에

박아 놓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소금배와 얽힌 전설이 전하는 고리봉은 조망도 좋지만 산세가 뛰어난 산이다.

동서 양쪽 사면은 거대한 바위 병풍을 연상케 할 만큼 웅장한 산세를 과시하고, 능선은 소나무가 울창한 가운데

부드러운 육산과 아기자기한 암릉이 번갈아 이어져 산행의 즐거움까지 더해진다.

 

고리봉에 올라서면 지리산 서북능선의 장쾌한 조망이 한눈에 들어오며 고리봉 남쪽 섬진강 건너편엔 8월 정기

산행을 다녀온 곡성의 동악산이 솟아 있다. 산세는 아기자기한 바윗길과 울창한 숲길에 동서면의 기암절벽으로

일명 남원의 용아장성 이라고도 한다. 전라북도에 5대 바위명산 으로 꼽히는 대둔산, 장군봉, 구봉산, 고정봉,

고리봉 중에 고정봉과 고리봉이 이 환봉산 능선에 있는 것이다.

 

원래는 삿갓봉에서 만학골로 내려올 생각이었으나 어찌하다 보니 능선을 타고 큰골로 가게 되었다. 하지만 능선

길이 평탄하지가 않고 하산하는데 1시간이 넘게 걸렸으니 삿갓봉에서 두바리봉을 거쳐 그럭재로 하산을 하는게

좋을뻔 했다. 그럭재에서 서재교까지 큰골 하산길은 길이 좋기 때문이다.

 

 산행을 준비하는 새벽에 아파트 베란다에서 바라본 여명

 

산행출발점인 방촌리 버스정류소를 지나 천만리장군묘로 오르는 능선을 향해 떠난다. 

 

 길을 잘못들어 사과 과수원 주인 아주머니에게 길을 물어보고 사과도 몇개 얻어왔다.

다들 이쪽길이 초행이라 정확히 길을 아는분이 없어 대충 감으로 방향을 잡고 간다.

 

 천만리장군묘로 가는 능선길엔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듯 희미한 등산로엔 덤불과 잡초가 무성하다.

  

능선을 오르면서 바라본 방촌리 방면 

 

 금지평야와 금지면 일대

 

몇몇 선두는 높은 바위위에 올라서서 자세를 잡는다. 뒤늦게 올라가서 같은 자세를 잡아보려 했는데....

바위가 너무 좁아 서있는게 무섭당. 엉금엉금 주춤주춤 앉아서 볼일(?)을 마치고 후다닥 내려왔다.

 

왼쪽 능선 뒤로 문덕봉이 살짝 보인다.

깜박하고 카메라를 스팟측광으로 설정을 해두어서 이날 측광점에 따라 달라지는 하늘색에 감탄을 하였는데

 

 조금전에 엉거주춤 하니 무서워 했던 바위

 

 날씨가 좋아 조망은 더할나위 없이 시원스럽다.

 

 드디어 올라선 주능선에서 진행방향의 반대로 10여미터 알바를 하면 천만리 장군묘가 있다.

 

영양천씨의 원래 시조는 중국 명나라 사람인 천엄이다. 그가 중국 영양에 살았기 때문에 본관을 영양이라 했다.

영양 천씨(潁陽千氏)의 중시조 천만리(千萬里) 장군은 명나라 장수로 1571년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총절사가 되어
북방의 몽고5부병을 섬멸시킨 공으로 내위진무사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명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자, 장군은 황제의 명을 받아 총수사 이여송과 더불어 조병영양사 겸 총독장으로서
두 아들 상(祥)과 희(禧)를 데리고 철기군 2만을 인솔하여 조선에 건너와 평양, 곽산, 동래 등지에서 대첩을 거두었고,

정유재란 때는 울산 등지에서 왜군을 섬멸했다.


 

전란이 평정되자 명나라 장병들은 귀국했으나 천만리 장군은 휘하 장수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두 아들과 함께 조선땅에 남아 우리나라 천씨(千氏)의 시원을 이루게 되었다.

이때 조정에서는 그의 혁혁한 전공을 치하하여 자헌대부로 봉조하(奉朝賀)의 벼슬을 내리고 화산군에 봉했으며

그후 숙종때 왜란 평정의 은혜를 잊지 못하여 명나라 황제를 추모하기 위해 궁중에

대보단(大報壇)을 설치하고, 화산군 천만리(千萬里)도 함께 향사(享祀)하도록 했으며

순종때는 가헌(家憲)의 뜻이 담긴 충장(忠壯)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이 무덤은 풍수지리에도 능한 이여송 장군이 직접 정하였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여송의 지리참모인 두사충이라는 사람이 있었으며, 그 또한  전쟁이 끝나고도 조선의 아름다운 산수에 반해

명나라에 가지 않고 조선에 남아 전국을 돌면서 명당의 위치를 기록한 소위 `두사충결(杜四忠訣)`이라는 비기를

남겼다고 하는데 아마 그가 이 묘자리를 잡은게 아닌가 싶다.

 

풍수지리가들 사이에서는 천만리장군 묘자리는 아들은 없으나 많은 자손이 태어나는

‘무자천손지지(無子千孫之地)’로 꼽으며천하 명당이요 길지로 꼽고 있다고 한다.

 

 천만리 장군묘는 멋진 조망터로도 손색이 없다.  바로 앞에 동악산과 청계계곡이 시원스럽게 조망이 된다. 

 

 

천장군묘를 지나 점심식사를 하고 바라본 고리봉 정상

 

 고리봉 우측 능선을 따라 삿갓봉이 보이고 뒤로 문덕봉이 보인다.

 

 멀리 보이는 문덕봉 우측으로 시원스럽게 펼쳐진 금지평야

    

고리봉에서 삿갓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머얼리 지리산 반야봉과 노고단이 보인다.

 

 고리봉 정상의 황당한 전경

 

조선시대 종5품 하계의 무관인 창신교위를 지낸 경주김씨 부부의 합장묘 인데...

산정상에 묘를쓰면 그 댁은 큰 부자가 되나 아랫마을에는 가뭄이 크게들어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묘자리로 사용하고 싶어도

정상에 묘를 쓰는것은 금기사항으로 누구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아무리 명당이 좋다고 하지만 이렇게 환봉산의 정수리에

해당하는 고리봉 정상에 묘를 쓴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고리봉은 명산이라하여 가뭄이 심할 때면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이 마을 뿐만아니라 인근 금지면에서도 온갖 정성을 다하여 모셔 왔다고 한다.
수일동안 몸을 청결히 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제물을 준비하여 기우제를 지냈는데 제물은 삼실과(대추, 밤, 곶감)과 돼지머리를 쓰고 기우제가 끝나면

그 자리에서 삼실과는 산 아래로 던지고 돼지머리는 땅에 묻고 하산 하였다고 한다.

 

1945년 이후 아낙네들이 기우제에 참가하여 남자들 보다 아낙네들이 주축이 되어 기우제를 지냈는데, 1973년 6월과 7월에 걸친 극심한 가뭄때

대강면 사석리 아낙네들이 기우제를 지내고 하산하던 도중 큰 비를 만났다 하는데 지금은 거의 천수답이 아닌 수리안전답으로 되어

우뚝 솟은 고리봉의 영험은 이제 전설로 남아 있다고 한다.

 

1962년 가뭄이 극심할 때 풍수설에 의하여 고리봉 정상 부근에 있는 묘를 파헤쳐야만 가뭄이 해소된다는 풍문이 떠돌아

대강면 사석리로 갓 시집온 어느 아낙이 자기 증조모님의 묘인줄도 모르고 파헤쳐 버렸다 한다.

그후에 그 사실을 알고 슬퍼하며 금잔디를 심었다고 한다. 

  

 

 고리봉 하산길에 바라본 삿갓봉 능선 건너편 555봉으로 향하는 능선을 오르고 있다.

 

위험한 구간엔 밧줄이 있어 전반적으로 크게 위험한 산행은 아니지만  전북의 5대 바위 명산에 손꼽히는 고리봉은 명성에 비해 등산로 정비나 관리에

크게 신경을 쓴것 같지가 않다. 좀더 가꾸고 홍보를 한다면 사람들이 훨씬 많이 찾는 산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삿갓봉을 가기위해 안부로 내려서 뒤돌아본 고리봉 산 전체가 통 바위산 이다.

  

 삿갓봉 정상 부근에서 다시 고리봉을 조망해 본다.

  

 이처럼 정상석은 두바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쪽으로 10여미터를 더가서 살짝올라있는 곳에 있다. 

  

 

 그럭재의 철탑과 그 뒤로 보이는 고정봉 ~ 문덕봉 능선

능선을 따라 큰골로 갈게 아니라 그럭재 까지 좀더 가서 편안한 큰골길로 하산을 하는게 좋았을것 같다.

 

 삿갓봉에서 큰골로 이어지는 능선길에서 속리님과 올리브님

 

능선 하산중에 뒤돌아본 고리봉

 

다시금 문덕봉을 더 자세히 보고

 

올망 졸망한 강아지들이 잔뜩 들러붙은듯한 바위 사면을 보며 신기해 한다.

  

환봉서원의 안내문

 

근래의 대표적인 천만리 장군의 후손분들은 전 국방부 장관을 지낸 천용택, 그리고 전 법무부 장관을 지낸 천정배 라고 한다.

방촌리에 있는 환봉사는 천만리 장군을 기리는 사당으로서 매년 4월첫주 일요일에 제향을 모신다고 한다.

이때 천만리 장군은 중국에서도 유명한 분이라서 매년 중국 허난(河南)성 등봉(登封)현 천촌(千村)을 중심으로 참배하러 온 일가들이

20여분 이상 머나먼 한국까지 오신다고 한다. 현재의 국적은 다르지만 같은 조상을 두고 있는 가까운 한가족 인것이다.

 

우리나라의 성씨중에 많은 성씨가 중국에서 비롯되었는데, 이처럼 정확한 계보를 가지고 있어서 양국 연합으로 제사를 모시는

성씨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궁금함도 생긴다. 아무튼 어릴적 물놀이 하러 온 이후 처음 방문한 금지면과

우리나라 천씨의 역사가 있는 이번 고리봉 산행은 시원한 조망과 함께 '어디로' 를 버리고 '누구와'를 택하기를 참 잘했다는것을

다시금 느끼게 해준 즐거운 산행이었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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